푸른 넥타이

2024. 4. 3. 20:27카테고리 없음

 

 

어느덧 시간은 많이도 흘렀다.
입학한 지 2주 정도 되었나?

입학을 하여 많은 입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웃길 정도로 이상한 음료수를 마시고,
친구와 리본으로 묶여 더욱 친해지기도 했었으며,
선배들이 열심히 준비한 예술제를 관람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

실기 시험이라는 명목 하에,

시험에서 패배한 사람을 총으로 사살한다.

그러고선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우승자에게는 푸른 넥타이를 쥐여주고 시신을 치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런 역겨운 학교의 정식 학생이 된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며칠 보진 않았다지만, 그래도 정이 든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내가 승리함으로써 죽음에 이르게 한 것 부터 힘들었는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눈은······ 더 많은 자들의 사망을 바라본다.

힘없이 쓰러지는, 17년의 육신이.

그리고 그런 학교의 정식 학생이 되는 내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구역질 나는 학교에서 도망쳐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친구들의 피가 잔뜩 묻었던 이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완벽함을 늘 좇으며 그 외의 것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내가, 나 스스로를 역겨워했다.

그럼에도 내가 탈출하는 이유는·········

 

죽어버린 당신들을 위해서.

죄책감을 가득 껴안은 내가 속죄하기 위해서. 그저 그래서인 것이다.

 

손에 푸른 넥타이가 주어진 이상은, 입학 포기를 할 수도 없는 몸이다.

지금 나에게 둘러진 이 푸른 넥타이는- 생명을 짓밟고 올라갔다는 증거가 되기에.

이제 와서 입학 포기를 하면, 나 대신 죽은 이들에게 얼마나 죄가 되는 행동인가?

나는 여기에서 더 이상의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나와는 달리, 직접적인 죄를 지었지만.

나와 똑같이 죄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성천아와 함께 탈출하기로 했다.

8시 30분에 만나자는 약속, 그리고 실행.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비화홀을 걷고, 또 걸어 나간다.

메인홀에서 연영과 실기실을 지나고, 헬스장과 무용과 실기실을 지나.

급식실에 다다른다.

 

문 하나가 있다.

굳게 닫힌 문이. 그렇게나 열고 싶어서 안달났던 문이······ 지금 내 눈 바로 앞에 있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래, 이 문을 열면 새로운 페이지의 시작이야.

 

새로운 죄를 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때가 왔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나와 같은 죄를 진 사람의 손을 꽈악 쥔 채로,

 

비화홀의 바깥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제 작별인 것이다.

 

 

 

모두 잘 있어. 혜주, 재헌, 하은, 아이. 해련, 명찬, 이든, 차경, 금이.

우재, 서준, 건, 령, 카즈키, 나리, 안호, 연화, 송이, 지윤, 선혜, 기태, 열희, 태민.

신하, 현진, 세은, 아오, 이내, 라미, 지원, 천공, 레미, 예지, 도현, 야옹, 승환.

자루, 하지, 리나, 문, 홀릭, 묘화·········.

 

그리고 진이와 여래. 실기 시험 승리를 축하해. 너희도 나와 함께 푸른 넥타이를 매었으면 좋겠어.

정아와 무형이, 나의 오랜 소꿉친구들. 너희들도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랄게. 어렸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작곡한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자. 이건 우리 셋의 약속인 거야.

강물결, 노예야, 반휘현, 진유수, 최설아, 한민, 한세현, 한아름, 한지운, 박선아, 서다은.

너희를 잊지 않을게. 너희의 이름 한 글자 한 글자를 머릿속에 항상 새겨가며 살아갈게. 잊혀지지 않는 거야, 너희들의 삶과 목소리와 그 표정 하나하나 전부···. 너희들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늘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을게. 너희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로 살아나갈게. 살아나가서, 너희들이 미처 살지 못 한 삶을 전부 다 살아나갈테니까. 금방 돌아와줘야해, 바보들아. 알겠지?

 

그럼, 한서현은.

여기서 물러나보도록 할게!

다들 즐거웠어, 행복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