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14. 22:25ㆍ커뮤/로그
자살 요소 | 유혈 묘사 등, 트리거 존재 합니다. 주의해 주세요.
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내가 룰렛에서 돌린 것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해 본다.
핫*스, 미니 선풍기, 새우과자, 노란 고무줄, 편지지, 보조 배터리, 이온음료, 수경, 잠옷, 수2 문제집. ···친구와 같이 나눠 먹었던 새우과자, 같이 쐬었던 선풍기... 벌컥벌컥 마셨던 핫식스, 이온음료. 빌려주려고 했던 보조 배터리, 보는 것조차 끔찍했던 문제집···
나는 남은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다. 내가 미처 다 쓰지 못한 물건을 누군가가 사용하길 바라면서.
나는 건물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자리를 손으로 쓱 훑어보기도 하고, 내가 자주 와갔던 곳을 들러본다. 그러다 편의점에 잠시 들어가, 가만 보고만 나온다. 아이들이 오갔던 그곳, 나도 친구와 함께 갔었던 곳, 여기에 가려다가 잠들어 버려서 친구들과 대화했던 때. 스쳐간 나날들을 나는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사랑했던, 함께했던- 이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했던 자리에 앉아본다. 그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과 나누었던 대화를 한 두 마디씩 해보고, 그의 말투와 그 사람이 했었던 행동까지 따라 해 본다. 여기서 네가 이렇게 했었지. 너는 투덜댔고, 화를 냈어. 너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긍정으로 말을 건넸고, 너는 나를 위로해 주었어. 너는 나와 조금 어색해했었고, 너는 내 마음에 손을 댔지. 그리고 너는 조금은 엉뚱했으면서도, 너는 이성적이었고.
···나에게 너희는 하나의 존재야. 너희는, 나에게 있어 너야. 너라는 하나의 존재가, 빛이고, 희망이었어.
그러고선, 나는 내가 사랑했던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과 만남을 갖는다. 이곳저곳 돌아다녀서, 짧고 길게 대화를 나누고, 대화를 원치 않는 사람과는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 난, 너희들을 따를게, 너희들이 나를 구원[救援]해주었으니.
아, 이제는 못 볼 나의 사람들아. 너희는 나약해지지 말고, 끝까지 삶을 이어나가라.
너희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나치게 조용한 사람, 너무 부정적인 사람, 이상한 사람, 조금은 다정한 사람, 영 웃질 않는 사람, 웃긴 사람, 이성적인 사람...
나는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본다. 이윽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희들과 했던 말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 순간의 달콤한 꿈처럼, 그것들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든, 너희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너희들과 함께 했던 곳에 다시 돌아갔다. 너희들과 나누었던 터무니없는 대화, 감정 깊은 대화를 다시 해본다. 너희들이 했던 행동, 너희들의 말투 몸짓 표정-
...모르겠어. 모르겠어, 이젠. 내가 일부러 떠올려내지 않는 걸까.
어느 정도는 맞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 대해 떠올리려 발버둥을 치고 있으면서도 나의 다른 쪽에서는 너희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든 막고 있었다. 더 떠올리지 못하도록. 그랬던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살해할 도구를 찾는다.
그러나 이상하게, 오늘따라 영 보이지가 않았다. 평소에 몇 번 봤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의아해했다. 계속해서 오피스텔을 뒤졌지만, 나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수 있을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자주 상상하고 금방 찾아내었었다. 다만, 그때는 용기만이 부족했을 뿐이야. 그러다 나는, 마땅한 것을 생각해 냈다.
창문.
창문을 통해서 뛰어내리자.
그러면,
내 죽음을 모두가 알지 못하겠지.
나는 계속해서 건물을 올라간다. ...그러다, 6층에서 멈춰 선다. 더 이상은 못 올라가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마땅한 창문을 찾는다. 마침, 신이 돕는 듯이 여유 있게 큰 창문이 있다.
나는 창문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고선, 거침없이 창문을 연다. 나는 밑을 바라봤다. 왜인지 한 번도 못 봤던 것 같은 모습처럼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답답했던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모든 것의 정답이 여기에 있는 것 마냥.
너희들은 내가 저 밑에서 죽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겠지. 그래야만 해.
이것은 어떤 감정인 걸까. 나는 내 마음이 단순히 시원해짐을 느낀 것인지, 창문이 열리고 불었던 바람 때문에 구멍 난 마음이 차가워진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닥을 계속 보고 있어 그런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나는 저 찬 바닥에 누우리라-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쉽지가 않다.
갑자기,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온몸이 으깨어져, 죽어버리는 것이.
나는 떨었다.
나는, 분명히 살고 싶다. 난, 살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나에게 더 이상 살 자격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이건 온전히 내 몸이니까 그래도 돼-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나는 과거를 떠올린다.
끝까지 잡지 못했던 손을, 나는 떠올려 낸다.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던 자신을, 나는 떠올려 낸다.
울지 말라며 자신을 큰 소리로 다독이던 내 이모를, 나는 떠올려 낸다.
홀로 걸어가야 했던 나날을,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마음을,
홀로 참아야 했던 감정을,
계속해서 도망치던 자신의 삶을-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희가 있었잖아.
나는 다시 과거를 떠올린다.
내가 먼저 내밀었던 손을, 나는 떠올려 냈다.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 다가갔던 나를, 나는 떠올려 냈다.
이젠 괜찮다고 잘못이 없다며 다독이던 나의 친구들을, 나는 떠올려 냈다.
같이 걸어갔었던 나날을,
누군가에게 기댔었던 마음을,
함께 나누었던 감정을,
이번에는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갔던 나의 삶을-
...그렇지만, 이제 나에게는, 너희들이 없어.
...바보같은 소리 마. 아직 남아있는 아이들이 있잖아. 그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언제까지 남들을 생각할 거야. 이번에는 너를 위해보라고.
걔네들이 있으니까, 나는 살 수 있었던 거야.
걔네들이 있으니까, 너는 이모를 따라가지 않았어. 그렇지?
죽은 아이들이, 목숨을 바쳐서까지 우릴, 나를... 구하려고 했잖아.
그건 걔네들이고, 너는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었어.
...
왜, 내 말이 틀렸어?
그만, 이제···
아직 일러, 이 한심한 놈아. 너 같은 건 빨리 죽어야 한다고.
이젠 싫어, 이런 거...
싫으니까, 그냥 죽으면 되잖아. 문제 있어? 어서 죽어. 저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라고!
...나는, 조금 더 희망을 가져보고 싶어. 조금만 더, 조금만...
이모를 버리고 떠나간 주제에. 배가 불러서, 뭘 가지고 싶어? 희망? 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기적인 것.
난... 난 산 사람이잖아. 그렇지?
응. 이모는 이제, 뇌 기능이 제대로 상실한 채로 악취를 풍기며 다니는 괴물 덩어리고.
이모가 나 대신 살아달라고 했어, 분명히. 내가 들었어.
이모가 너 싫어했던 거 몰라? 아직까지 눈치가 그렇게 없어서야.
살아가야 하는데...
이제 죽을 시간이 왔어, 유이안. 자, 내 말을 듣고 어서 뛰어내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데······.
어서, 유이안.
···
마음속 또 다른 나는 계속해서 나를 죽여왔어. 나를 찌르고, 발로 걷어차버리지.
이모가 죽은 그때부터 쉼 없이 그래왔어.
여전히 그것은, 그것들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어.
뇌를 찌르는 듯한 고통, 바늘로 살을 찌르는 듯한 느낌, 예고 없이 그때와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가빠오는 호흡, 늘 내 목을 죄어오는 미지의 어떤 것들.
모두가 나를 죄인 취급하는 끝없는 눈동자들. 너희들마저 나를 외면했다고 느껴지는 감각-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 시선들을.
이제는 끝내려고 해.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를 자유롭게 하려고 해.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아. 해방되고 싶어- 이 罪惡感에서.
나는 이로써 또 다른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만- 미안해, 나는 이제 벗어나고 싶어.
아, 너희는 내 의견에 반대하니?
그는 제 말을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신발을 벗지 않았다.
그는 제 안대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그가 풀었던 초커를 손에 쥐었다.
그는 제 시계를 만지작 거렸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 12:00.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는 분명히 틀린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유이안에게는, 영원의 시간이다. 그가 영원히 갇혀있을 시간.
그는 날이 더움을 깨닫는다.
밤인데, 바람이 부는데. 제 팔을 만지니까, 이렇게도 차가운데.
덥다.
그는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호흡이 불안정하게 떨린다.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그제야 눈가에, 얼굴에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제 얼굴을 양손으로 넓게 덮었다.
축축하고,
뜨겁다.
그는 제 손의 떨림을 느껴, 제 손을 맞잡아 꽉 쥐었다.
여느 날과 같은 熱帶夜야, 나의 몸을 더 뜨겁게 감싸줘. 내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게.
그는 뛰어내리기 전, 창문에 위태롭게 서 있는다. 그러고선, 몸을 돌려 오피스텔 쪽을 향한다.
그는 한참이나 고민했던, 늘 속에 지니고만 있던 그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아무도 듣지 않을 공간에서.
"모두 잘 있어, 고마웠어, 미안해, 사랑해. 나중에 보자."
쿵,
꽤나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은, 아주 미약한 의식이 있었다.
점점 퍼져나가는 제 피를 보며, 그는 픽 웃었다.
"···절망적인 결말이네."
그는 게슴츠레 떴던 눈을 다시 닫는다.
자신의 선택을 따라 하는 이가 없길 바라면서.
그렇게 그의 여름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