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0. 23:59ㆍ커뮤/로그
그리고 나는, 바다 앞에서 영원을 맹세했다.
처음에는 너에게 별 다른 생각이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앉아 달콤한 초코바를 꺼내 먹던 너만 기억했을 뿐이었다.
혼자 가위바위보를 하는 네가 신기하게 느껴져 같이 가위바위보를 했었던 때.
그런 네가 그저 신기하고, 특이하게 느껴지기만 했었다.
오직 그게 너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더라. 다른 이와 다를 바 없던 네가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커플 바지를 함께 입자고 땡땡이 무늬의 수면 바지를 들고 있던 너에게 찾아갔던 것부터였던 것 같다.
'웬 수면 바지에, 웬 커플 바지람.'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다.
나는 너의 말에 따라 수면 바지를 입었고, 너에게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들었었다.
또 너의 꼬리를 만지고, 너의 귀를 만지고-
···하는 사소한 행동을 해 가면서 너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넌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내가 석양을 정말 좋아하거든! 해가 바다 밑으로 숨는 걸 멍하니 볼 때 말이야, 나도 모르게 홀려서 계속 보게 돼."
"마르켈은 왜 온 거야?"
"나는 사실 힐링 목적으로 왔던 건데, 슬슬 시간이 지날수록 빛의 정체가 참 궁금해지지 뭐야."
하며 작은 크기로 시작했던 대화는, 점점 서로의 마음으로 향하게 됐다.
빛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말을 시작점 삼아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했고, 아마도 나는-
"내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너처럼 참 좋은 애도 못 봤겠지."
라는 말을 기준으로, 너를 좋아하게 됐던 것 같다.
부정했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라곤 그 짧은 시간에 단정 냈기에, 없을 줄 알았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상처받는 일은 없게 하자고.
수능이 끝난 그날 이후 이별의 통보 대신 컵에 담긴 물에게 적셔졌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소리치던 말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말들은 아무 의미 없었다.
너는 계속해서 내게 다가왔다.
내가 한 걸음 걸어가면, 너는 두 걸음을 걸어왔고, 다섯 걸음을 걸어가면, 너는 열 걸음을 걸어왔다.
"나도 행복해. 너랑 있으면 가슴이 너무 뛰어."
"-무엇보다 널 만난 게 나한테 제일 큰 선물이야."
"마음이 따뜻해졌다니 다행이네-... 내가 너의 기쁨이 되었다는 거잖아."
"벌써부터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거 너무 좋은 것 같아."
"사실, 이런 감정은 누군가에게 처음 느껴보는데... 마르켈은 내 모든 부분에서 처음인 사람인 것 같아."
"이 섬에 우리 단둘이 있는 것 같아. 행복해."
그렇게 부정해 왔었는데, 나는 너를 회피할 수 없었다.
너를 받아들였어야 했고 나의 바보 같은 마음과 대면했어야 했다.
그리고, 내 마음과 대면하길 두려워하던 나를 도와준 것이 너였다.
나의 마음과 대면한 나는, 이내 사실을 인정했다.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저 사랑한다,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말로는 전부 표현되지 않았고,
단순한 감정부터 복합적인 감정까지 모두 실뭉치처럼 잔뜩 꼬인 채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게 무슨 말을 해야 나의 감정이 온전히 전달될까- 하는 생각을,
몇 날 며칠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아직 나는 정답을 찾지 못했다.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지.
그렇지만, 정답이 아니면 어떠한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거짓 없이 내뱉으면 된다고 판단 지었다.
그것이 고백이니까.
그리고 여기- 달빛 아래서,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아직 엉켜 풀리지 못해 잔뜩 헝클어진 마음을 전달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너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나와 너, 우리는 지금 이 바다 앞에 서있다.
조용히 울고 있는 풀벌레와 소리 내어 흔들리는 바다 앞에서,
나는 네게 말했다.
"진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여느 때와 같이 너의 손을 잡고 같이 길을 걸어 나가고 싶어. 그리고,"
"몇십 년 후가 되더라도, 너의 옆에서 함께 바다를 보고 싶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