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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8. 16. 18:57커뮤/일댈 · 비댓 · 답멘

 

 

당신이 장갑을 낀 손을 잡아오자, 흠칫 놀라면서도 가만히 잡혔다. 역시, 누군가가 손을 먼저 잡아오는 일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익숙하더라도, 그다지 좋지 않은 감각이 뒤따라왔기에. 그러나 손을 잡는 상대가 다르고, 더욱이 그 상대가 당신이라면··· 꾸욱 참고 견뎌보겠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의 염원을 덧그리면서.

 

"···내가 소중한 사람이야?"

 

제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당신의 말에 눈 크게 떴다가, 역시 눈을 전부 보여주는 것은 껄끄러워서 다시 시선 내렸고. 누군가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역시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저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보다, 불편하고 껄끄러운 존재가 되는 게 더 익숙했으니까. 저를 아끼는 것으로부터 오는 감각은 생소했다. 물론 친형인 타카아키는 제가 어려서부터 절 아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만, 당신과도 같은 남이라면··· 더욱. 이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그렇지만, 그 어색함을 비집고 들어오는 기분 좋은 감정은 분명히 느껴졌다. 불편하지만, 조금 더 갈망하게 되는 감정이었다.

 

무얼 위한 건지 묻지 말라는 그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 살짝 갸우뚱하고 당신 바라본다. 초코바는 그냥 초코바 아니야? 거기에 대체 무슨 음흉한 마음을 넣었길래. 라는 농담을 섞는 것은 덤이었다.

 

당신이 눈 이리저리 굴리는 표정을 보았다. 난감한 상황이구나. 그는 입을 열어 안 보여줘도 된다고 하려던 찰나, 당신이 먼저 입을 열었고. 제 맨 피부를 보여주는 상대가 저라는 것에 조금 기뻤으려나.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남의 앞에서 가면을 벗은 적도 없고. 이 역십자가 동공이 담긴 눈을 보여준 상대는 저와 피가 섞인 가족과 친척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제 맨 눈을 보여준 상대가 당신이 처음이라는 말.

 

당신이 팔을 휙 걷어 내리자, 화상 흉터와 베인 듯한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가만히 내려보다가, 다시 당신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당신의 그 표정과, 불안함이 묻어난 목소리. -이번에는 제가 당신을 다독일 차례였다. 당신의 팔을 내려다보면서, 제 가면을 뒤로 돌려 썼다. 여우 가면의 귀 뒷부분. 그 귀의 각각에는 사이좋게 역십자가가 그려 넣어져 있었고, 이번에는 제 눈을 뜨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은 채로 살며시 눈을 떴다. 가면으로 인해 가려진 시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완전한 맨 눈으로, 당신의 전체를 알고 싶었다. 당신의 팔을 천천히 쓸어본다. 당신의 팔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러나 당신이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지도 않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제 입으로 꺼내기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는 그것을 아주 잘 알아서··· 자신의 고통을 그 어디에다가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는 픽 웃다가, 제 양손에 착용한 장갑을 벗어 보인다. 이건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걱정할까 봐. 그렇지만 당신이 그렇게까지 용기를 내면, 내가 이러지 않을 수가 없잖아.

드러난 맨 손에는 칼로 벤 듯한 흉터들이 고루고루 분포해 있었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눈에 들어올 것은··· 양 손등의 가운데에 크게 새겨져 있는 십자가 흉터일 터다. 손을 내리면 역십자가, 올려서 손등을 내보이면 십자가인 그 흉터가 선명했다. 그러고서는 당신의 손을 잡았다. 해맑게 웃는 얼굴을 내보이면서.

 

"아하하, 우리. 흉터까지도 꼭 들어맞네. 그렇지 않아? 테루. ···네 팔, 꼭 멋있는 검객 같아서, 나는 좋아."

 

그렇지만 상처가 이 이상으로 더 늘어나진 않았으면 좋겠네. 뒷말은 꾹 삼켰다.

 

···그나저나, 오늘의 소문에서는 사실 숨겨진 검도 천재였다고. 긴팔을 입는 게, 팔에 잔뜩 칼자국이 나서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이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허무맹랑한 거짓 소문일 테니까. 다만··· 마지막으로 붙었던 말. 키요테루 군에게 한 번 보여달라고 해 볼까? 그 말이 역시나 찜찜하다. 당신이 스스로의 팔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떠는데. 왜 보여달라고 말을 했었던 걸까. 다시 당신을 올려다본다. 새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제 맨 얼굴이 낯설지만, 그럼에도.

 

"···있지, 테루. 나는 네가,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편안해졌으면 좋겠어. 팔에 있는 그 흉터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이야. 물론,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잘 모르겠어. 네가 내 앞에서는. 무언가를 억지로 꽁꽁 싸매 숨기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에. 나도 이제 네 앞에서는,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으니까···."

 

붉은 두 눈을 느리게 꿈뻑인다. 이번에는 누군가가 제게 의지할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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