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6. 02:09ㆍ커뮤/일댈 · 비댓 · 답멘
어라. 당신의 말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었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 반짝이는 윤슬. ...제가 그렇게까지 멋있는 사람이었던가. 그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멋쩍지만,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말해주는 당신이 고맙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좋게 봐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집안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당신의 그 말이 고마웠던 것이다. 당신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고 한들,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그저 과분해서.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테루. 너는··· 음."
정작 자신이 당신을 칭찬하려니 말문이 조금 막힌다. 누군가. 그러니까, 어떤 '사람'을 칭찬해 본 적은 거의 없었기에. 하지만 찬양 수준으로 칭찬하는 것에는 나름 도가 텄다. 그저 그 상대가 다를 뿐이지.
"너는 초봄에 내리쬐는 햇살 같아. 밤바다에서 높이 떠오른 초승달 같고."
—제가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이자 반짝이는 윤슬이라면, 당신은 햇살이나 달이겠지. 구름 없는 하늘 사이로는 햇살이 비추는 게 당연할 거고, 윤슬이 생기기 위해서는 햇빛이나 달빛이 물에 반사되어 반짝이니. 윤슬이 생기려면 햇빛이나 달빛이 필요한 것이니까···.
그리고 당신은 초승달이 곧 차올라서 보름달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까.
큭큭 웃으며 삐죽 튀어나온 당신의 입을 아프지 않게 콕콕 찔렀다. 그러다 당신이 제 볼에 손을 얹었을 때 당황했는데, 당신이 또다시 먼저 입을 맞춰오니 더 당황하는 것이다. 당신이 제 아랫입술을 머금었을 때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지고 싶지 않았기에. 냅다 당신의 입 속으로 혀를 집어넣어 당신의 혀와 맞닿게 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바로 입을 떼어내 놀란 눈으로 당신을 봤지만. ...
······아, 떠버렸다.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눈이 뜨여졌다. 붉은 눈 안에 담긴, 얇은 원형인 동공 안에 역십자가 동공이 박혀 있었다.
온갖 불안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만약에 당신이 종교가 있다면. 혹시나 자신이 몰랐던 제 머나먼 친척이라면. 그렇다면 매도당할 것이 뻔한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머릿속이 잔뜩 뒤엉켜버려, 고개를 떨구어 버리고는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부러 당신이 장난스러운 투로 말하는 게 들려온다. 당신이 눈 맞춰오면 저도 슬 눈 떠서 당신 쳐다보다가, 어색하게 고개 돌렸고. 아직은, 아직은. 타인에게 이 빌어먹을 동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두려웠기에. 토닥이는 당신의 손길을 가만히 받고만 있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아껴놨다더니··· 내가 테—루의 소중한 사람의 자리를 빼앗아버린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하긴 하네에."
그러다 문득, 저 소중한 사람의 자리를 제가 꿰차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느리게 만졌다. 그러다가, 다시 손 내려놓는다. 역시 너는 내게 과분한 것 같아.
제 귀의 끄트머리를 만지자,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만지지 말라는 듯이, 제 귀를 만진 당신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렸고. 당신의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다는 걸 여전히 인지하지 못했다.
당신의 종교에 대한 답변. 가만히 듣다가 내심 안심했다. 믿는 종교가 없구나. 그렇다면 같은 교도 아니겠지. 매도당할 일은 없겠어. —따위의 생각을 곱씹으면서. 그러다 돌아온 질문. 당신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그 질문에 한참을 고민한다.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입 연다.
"······아니, 역시 없는 것 같네. 난 종교를 믿기에는, 글쎄, 음. ···접근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아하하.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러다가 무언가 떠올렸다. 오늘의 소문에, 당신의 이야기가 올라왔었지. 생각해 보니 당신의 팔의 내부를 본 적이 없었다. 여름인데도. 눈 깜빡이며 당신 살피다, 조심스레 물어본다.
"···테루우. 혹시, 그 팔. 보여줄 수 있어?"
싫으면 안 보여줘도 돼. 덧붙였다.
···미안해. 그렇지만, 아직은 네게 진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내 모습을 알면 너마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키요테루. 나는 네 곁에 있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