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8. 14:31ㆍ커뮤/일댈 · 비댓 · 답멘
⋯미엔. 그러지 말고, 살아. 할 수 있는 게 왜 없어. 너는 여기서 죽긴 아까운 사람이잖아. 언제나 자유로이 글을 쓰고 싶어 했고, 쓰고 싶어 하고, 언젠가는 네 글이 온전히 실린 책도 내고 싶다며. 네 글을 사랑하는 건⋯ 나뿐이 아니야. 그럴 거라 믿어. 지금도 믿고 있고.
살으라고,
너 없는 세상에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아 찰랑이는 물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짙은 붉음을 띄었던 것은 푸름에 잠기어 그 색이 옅어졌다. 붉음과 푸름이 만나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은 어떠한 혼합물이 되어 몸을 가득 적신다.
넌 진짜 나쁜 놈이야. 사에구사.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 멍청아. 네 덕에 내가 살아갈 수 있었고, 네 덕에 내가 나만의 글을 쓰고자 다시 다짐하게 되었었는데. 나를 구원해 놓고, 너는 죽어버린다고? 허튼 소리야. -입 밖으로 새어 나가려는 짧은 문장들을 겨우 씹어 삼킨다. 그 탓에 목이 가득 메인 것 같다. 하지 못한 말들이 서로 앞서가겠다며 발버둥을 치는 탓에 목이 막히고 또 막힌다. 숨이 막혀, 온전한 호흡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인간은 살고자 숨을 쉬려 하고, 그 때문에 거칠게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붉은, 붉었던 눈동자의 밑으로 계속해서 푸름이 떨어진다, 그 끝을 모른다는 듯이.
이윽고 물기 어린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자, 더 울컥해 버리는 건 역시 어쩔 수가 없는 걸까.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니까··· 네게 웃는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데. 마지막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마다 계속해서 울음이 나왔다. 웃을 수 없다. 하기사, 사랑하는 제 연인을 떠나보내며 웃음을 얼굴에 담는 자가 얼마나 많겠냐만은···. 그래도. 네게는 행복한 기억만을 남겨주고 싶다는 알량한 욕심이었으니. 네가 이 마음 알까. 그래, 어쩌면··· 너와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추측을 했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거냐는 그 말에 흐트러진 얼굴을 겨우 올려 보인다. 붉음과 푸름이 엉망진창 섞여 더러워진 얼굴을, 보이기 싫은 추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건 보여주기 싫었는데. 네가 보여 달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너, 진짜 싫어. 그럼에도 네 웃는 얼굴을 보니까 미워할 수가 없게 된다.
차라리 이렇게 될 운명이었으면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너와 내가 이렇게 죽어가지 않았을 텐데. 어딘가에서, 우리는. 각자만의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너 만큼은······ 우리가 이렇게 추락하게 된 것에 나의 탓이 있는 걸까. 내가 너를 잡고 함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걸까. 나 때문에, 괜히 네가. 마땅히 행복 받으며 살아가야 했을 네가······
⋯미엔, 나중에 보자. 그땐 꼭 웃어줘야 해.
잠깐만.
안돼, 요루토시.
나는 아직 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어.
야속하게도 찢어질 것만 같은 총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총알이 나의 심장도 같이 꿰뚫은 걸까. 그것이 아니고서야··· 나도 이렇게 아플 리가 없잖아. 요루. 일어나 봐. 눈 좀 떠봐, 요루··· 내 말 들려? 장난하지 마. 하나도 재미없어. 이런 건 싫어. 요루. 요루토시. 나, 아직, 네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아아···
그리도 사랑하는 너는 결국 부서지고 말았구나······.
엉망진창이 된 손으로 당신을 더듬었다. 힘이 다 빠진 손으로 붉음이, 생이 흘러넘치는 그 심장에 뚫린 구멍을 막는다. 내 손에 네 붉음이 가득 묻었다. 이런 건 바라지 않았는데. 어쩌면 당신이 살아있었으면, 아프다고 했을 만큼 강하게 구멍을 막았다. 그러더니 당신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 흔든다. 요루토시. 요루토시. 네 이름 가득 부르면서. 그러고서는··· 네 가슴에 머리 기대어 푸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네게 말하지 못했던 문장은 녹아 심장에 스며들었다. 빠르고 불규칙하게, 그럼에도 뛰는 그 심장의 속으로.
제 목이 찢어져라, 이 공간이 떠나가라 세차게 후회를 쏟아낸다. 인간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거칠었다. 이렇게까지 제가 울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몰랐지만··· 그것이 중요한 사실일까.
머리는 아프고, 목은 잔뜩 쉬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은 눈물을 멈추는 법을 몰랐다. 찢어진 듯한 고통이 밀려오는 목은 낮은 소리만 연신 반복했다. 어렵게 뜬 눈으로 당신을 내려다본다. 그럼에도 너는 눈을 뜨지 않아.
후회와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허탈함과 체념만이 남았다.
내게 너 없이 살아가라는 말은,
여린 식물에게 일말의 햇빛도 쬐여주지 말고 살아가라는 말과 같아서.
내 삶의 의지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올바른 대지가 없는 곳에서 나약한 인간은 서있을 수 없다.
한참의 후회가 가시고 나니, 생각 하나가 머리에 들어찼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나도 살 수 없을 테니까.
희망의 빛 한 줄기조차 보이지 않는, 좁은 상자 속에 머물고 있는 나니까···
곧, 배에 꽂힌 칼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고, 배 속에서 빼냈다. 눈을 떴을 때 느꼈던 고통보다 상당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참 전에 쉬어버린 목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붉음으로 가득 찬 날붙이를 본다. 어느새 바다의 푸름은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너와 함께 만들었던 기억들을 회상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만이 남았다. 그런 지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한······
꽃이 피는 날에 다시 보자, 요루토시.
사랑하는 내 사람. 나의 영원한 짙은 푸름아···.
말이 전부 끝나면, 회색 빛의 칼날이 목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온다.
또다시 붉음이 푸름에 닿아 섞이겠구나.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혈액이 물과 함께하는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네게 닿아가 섞여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