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 23:58ㆍ커뮤/로그
- 나 봐봐, 싫은 표정인지.
- ···아니, 좋아 보여.
바람이 차갑게 나를 스쳐 지나간다.
콧김은 뜨겁고, 공기는 차갑다.
그리고 나는 네 앞에 서서, 너와의 추억을 잠시 회상한다.
1, 첫 만남
"······누구?"
"나무 위에서 자고 있는 거야? ...그거 편해?"
"응. 여기 편해······ 아무도 눈치 못 채거든. 넓기도 하고··· 너도 올라올래?"
첫 만남이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만남.
우습게도 너는 나의 기억 첫 장에서부터 웬 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처음에는 저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게 그저 너의 매력이거니, 하고 생각한다.
2, 음료수
내가 처음으로 온전하게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음료수다.
음료수를 마시고 나서부터··· 너와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사랑을 느끼게 돼서, 너에게 좀 더 다가가기가 편했었는데.
그런 너는 나를 잘 받아주었고.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던 나를 다정하게 받아준 게 너였다.
사소한 오해 때문에 친구를 잃기 싫은 마음이 들어. 조금 울었었는데. 아마 그때 네가 웃으면서 내 눈물을 닦아 줬었지.
그러고선,
처음으로 네가 내게 사랑을 속삭였었다.
"나도 아까 말했잖아, 사랑한다고. 너도 한 번만 해줘 ...그냥, 듣고 싶어서."
"······어, 응, 사랑해."
네가 이 상황을 얼마나,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네 터질 듯한 얼굴이 참 웃겼었는데. 기억나?
물론, 나도 네가 낮게 속삭이는 듯한 말 때문에 심장이 요동쳤지만.
이상한 음료수에 우리 둘 다 취한 듯, 가벼운 농담 같던 상황.
그 밑에 우리들이 서 있었는데.
3, 뒤바뀐 우리
재밌는 이벤트를 한다길래, 아무 의심 없이 신청했었다.
여태껏 서로 서먹하고 어색한 기류가 맴돌던 다원고와 한울고 학생들이 더 친해지길 바라서 열었다는데,
···아무래도, 이 이벤트가 서로의 영혼을 바꿔주리라 생각했던 사람 인수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나름 재미있고 좋았던 추억으로 남았으니까 다 괜찮은 거겠지.
아, 그때 너의 몸으로 이 표정 저 표정 지어보던 게 정말 재밌었다.
한껏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다가, 이내 하트를 날리기도 하고. 방긋 웃어보기도 하고. ...네가 평소에 하지 않을 표정들만 골라서 지었더니, 네가 뭐랬더라. 기억 자체는 희미한데, 아무튼 엄청나게 싫어했다.
" 왜, 예쁜데? 귀엽잖아, 이 표정.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맨날 이 표정으로 그렇게 무표정만 하고 다녔던 거야? 앞으로도 잘 좀 웃어봐. 이 귀여운 얼굴 그냥 냅두지만 말고."
" 상, 큼하긴 무슨! 나무늘보지, 게으른······. 이, 이익······. 돌아가면 가만 안 두겠어."
4, 밤, 늦은 일상
어느 어스름한 저녁 날에, 기타를 연주하고 있던 너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노래를 부르나, 왜 갑자기 기타를 연주하나, 기타를 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거구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네가 보이자마자 다가갔다.
네 말에 의하면, 옛날 노래였던 그것을 너는 아름답게 불렀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부드럽고 달콤했던 멜로디였다.
그러고선 괜히 너에게 내 기타 실력을 자랑하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서, 네 기타를 빌려 천천히 연주해 나가기 시작했었다.
푸른 저녁.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던 나와 그걸 듣고 있던 너.
아직도 두 눈앞에 보이는 것 마냥 생생하다.
"Trun the page, maybe we'll find a brand new ending···."
페이지를 넘겨 봐, 새로운 결말이 있을지도 모르니.
5, 선물
매점에 다녀오다가, 문득 웬 바보처럼 귀여운 키링 하나가 있어서 무심코 집어 들어 샀었다.
왜 다른 귀여운 것들도 아니고 하필 이거지, 하는 작은 의문이 있었으나,
아마 네가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다.
또 때마침 서로에게 선물을 주는 작은 행사를 진행한다고 해서, 너에게 선물했다.
다행히도 내가 네가 떠올라 선물했던 옷과 키링 둘 다 착용한 채로 넌 바닥에 누워서 나를 가만 응시했다.
나름 잘 어울리는 올블랙 의상과, 그 사이에서 귀엽게 저 혼자 채도를 높인 채로 방긋 웃고 있던 키링이 어우러지는 너의 모습을 보니 퍽 웃음이 났다.
" 아, 키링 귀엽더라. ······ 나 닮았어? 어쩌다 보니 수박이 됐네."
" 응, 그치? 키링··· 응. 너랑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이렇게 생긴 얼굴 하며··· 귀엽게 생긴 거 하니."
그리고 너도 내게 선물을 보냈었다. 무려 여관 열쇠를···. 크기는 내 것보다 더 작은데, 사실상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때를 더듬어 봐도, 영 믿기질 않는다. 그리고, 그 선물이 익명이라곤 했지만, 아무리 봐도 말투 하며 닌자 수박이 남겼다고 한 게 너무나 너 같았었다. 그래서 그걸 받고 한참을 웃었었는데.
6, 리본에 묶인 채로
이때 참,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이 때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니까, 전부 기억할 수도.
처음엔 사실, 가장 먼저 빙고판을 맞춘 페어가 상품을 받는대서 거기에 혹해서 금방금방 하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어쩌다가 가볍게 서로 칭찬하기부터 시작해서, 첫 입맞춤까지 갔었다. 처음에는 네 얼굴이 붉다가, 나중에는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나 스스로 봤는데, 참 어색하더라. 내가 원래 남 앞에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조금 부끄럽기까지 했었지. 그렇지만, 끝에 남은 감정만 봤을 땐 조금은 좋았다.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좋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친한 애랑 입을 맞추었을 뿐인데, 이거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가슴이 뛰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이때부터 자각했던 것 같다. 나름 빠르면 빨리 자각했던 거고, 느리면 늦게 자각했던 거였겠지. 어찌 됐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좋았어."
"그치? 거봐, 늘 괜찮을 거라니까."
7, 단 둘이서
네가 웬일로 나무가 아닌 공원 테두리에 앉아 나를 보고 말을 걸었을 때, 마침 밤이니까 할 일도 없고 심심했던 터라 무심코 다가갔다. 대화의 주제는 첫사랑에서부터 시작해서 여러 것으로 번져나갔다. 별을 좋아하냐는 둥, 소풍을 가자는 둥··· 생각해 보니, 약속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나중에 같이 소풍을 가자는 얘기와, 시원한 계곡에서 놀면서 수박도 먹자는 일상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분명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약속들을 했었지. 물론, 우리 둘 다 생각보단 바쁜 몸이라 늘 만나서 놀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항상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도 너에게 깊은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흉터가 생긴 이야기, 지금의 성격이 형성되기까지의 이야기 같은···
너는 그런 나의 말에 열심히 공감을 해 주며 차분히 들어주었었고.
또··· 네가 내 연기를 도와주었을 때도 기억이 난다. 뇌리에 선명히 박혀서 떠나가질 않는 그 장면.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어요. 내일 하루도 평탄치 않은 하루가 되겠지만··· 그래도, 저는 당신이 있으니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내일 또 봐요. 로미오."
"...줄리엣. 우리에게 그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나는 늘 당신의 곁에 있을 겁니다. 당신의 옆에서 늘 당신을 지켜줄게요. 그러니, 오늘 밤도 잘 자요, 내 사랑. 내일 또 봐요, ···내 사랑."
하고는 가볍게 네 손등에 입을 맞췄었고.
" ...이상했어, 연? 불편했으면 사과할게······."
"아니요, 로미오, 아주 아름다운 말이었어요."
"···그, 그래요? 고마워요, 줄리엣··· ...나의 작은 천사, 나의 사랑스러운 여인. 나의 피앙세여···."
연기를 하던 내가 당황해서 제대로 된 대사를 못 내뱉을 만큼, 네가 하는 말 때문에 심장이 계속해서 간질거렸다. 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그저, 네가 나한테 전하는 말과 내가 너에게 전하는 진심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마치 하나의 스토리에 빠져버린 인물처럼···.
8, ······
그렇게 지금, 나는 짧은 회상을 마친 후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내 앞에는 여전히 네가 서 있고,
너는 환한 달빛을 받으며 금방이라도 사라질 꽃 마냥 웃고 있다.
그리고,
이 찬란한 여름의 청춘이 지나가기 전에,
나는 네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한다.
있잖아, 연아
듣고 있어?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나도 잡을 새 없이 빠른 속도로 커져나가더라
너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려나?
그렇지만, 여태까지 몇 번이고 네게 확신을 받아왔었지만,
여전히 뚜렷하지 않아
네가 내 마음을 받아줄지
그렇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분명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아서
지금에서야 네게 말을 해
좋아해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너를 좋아한다고 계속 말하고 싶어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모르겠는데,
네 앞이라 마음의 긴장이 조금 풀려서 그런가 봐
그리고,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너와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네가 소중해
지나가다 스치는 모든 것들에 네가 배어있어
그만큼 네가 계속 생각나고,
네가 내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너와 함께 영원히 여름에서 살 수 있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