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었던 말

2024. 2. 28. 13:20커뮤/로그

 



있잖아.
너희들은 소원을 빈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어?

그냥~ 고기를 먹고 싶어요, 라든가. 청포도 음료를 마시고 싶어요라든가. 아니면, 세계정복! ···이라거나. ㅋㅋ.

하여튼, 너희들이 지금 간절히 바라는 소원들 중,


딱 하나만 고른다면 말이야.

 

내 소원?


...나는,

 

 

 

 


 

 

 

 


- 좋아, 로웬. 오빠 이름은?

- 테디!

- 아니아니, 성씨까지 붙여 말해야지.

- 음~ 테디 스펜서?

- 옳지. 그리고, 오빠 나이는?

- 15살!

- 로웬의 나이는?

- 10~살!
- ···그래. 잘 기억하네. 음, 어디 보자, 오늘 날짜. 12월 9일······.

 

이름, 로웬 스펜서.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될 나의 동생.

노란 머리칼에 푸른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자라나 있어서, 누구보다 눈에 띄고 더 예뻐 보이는 나의 동생. 로웬. 작은 체구에 병약해서는 늘 해맑게 웃는 표정을 짓고 다녔던 나의 동생, 로웬.

나는 네가 좋지 않았다. 어쩌면, 싫음에 더 가까웠다. 날 때부터 병약하게 태어나서, 내가 독차지했을 부모님의 사랑을 네가 전부 다 가져가는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네게 더 투덜댔다. 그렇게 원하던 동생이었음에도.

 

지금 와서는, 네게 다정히 대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천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 내가 너를 다정히 대해주지 못해서. 내가 오빠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너는 그리도 일찍 떠나가버렸고,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부모님마저 트라이아나에 휩쓸려 떠나보내게 됐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나를 찾아온 스무 살.

아마도 나는 이때부터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살아갈 의지가 없었다. 이유도 없었고. 목표도, 미래도, 그 무엇 하나 뚜렷한 게 없었다. 그저 집 안에 굴러다니는 아무 음식이나 대충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고, 집에서 자고. 또 일어나서 울고, 먹고. 다시 잔다. 그렇게 보낸 의미 없는 시간이 몇 년······.

그러다가, 어릴 적 부모님이 했던 제안을 승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살아갈 순 없었다. 비록, 내 소중한 가족들을 잃고 나서, 기타 등등(Etc, 엣세터러.) 따위로나 불리기를 바랐던 나였지만. 내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누군가는 그의 가족을 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너무나 한심하다고 느꼈다. 누군가가 제게 있어 목숨과도 같을 이를 떠나보내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과거에만 머물러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해군을 하게 됐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어서. 단 한 명일지라도.

그렇게 시작했던 해군 일인데.

 

도대체 내 눈앞에 무슨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피가 낭자했다. 검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흩뿌려졌다.

해군인지 해적인지도 모를 자들에게 맞았다. 머리도 맞고, 복부를 가격 당하고.

허나 내가 공격당하는 것은 익숙했다, 당연하고. 어려서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계속해왔기에, 이쯤이야 익숙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지켜야 할 동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상대 진영에도,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

친구가 맞았겠지. 부디. 그랬다고 믿고 싶다.

언제 친해졌는지도 모를 자들이, 서로에게 끝없이 무기를 겨누고 공격을 가하니, 그저 무력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지. 사람을 지켜야 할 해군으로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저 방관자에 불과한가? 이럴 거면 해군을 대체 왜 한 거야, 테디 스펜서. 어서 싸움을 말려야지, 네가 칼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럼에도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감염이 된 것도 아니었는데, 누군가가 내 발목을 강하게 붙잡고 절대 놔주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꾸준히 흘러갔다.

언젠가, A구역이라고 칭하던 곳에 향하게 됐었다.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전투로 인해 부상을 입은 동료들이 있어서. 괴물까지 나온다고 해서···. 내가 가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다치더라도, 내가 다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가지 말았어야 했을까.

나는 이 망할 조사에서 푸른 냉기에 두 번이나 덮쳐졌으니까!

 

첫 번째는 각오를 했었다. 쌓인 돌들에서 푸른 냉기가 묘하게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무언가 수확이 있지 않을까 싶어 발로 툭 찼다. 그러자, 첫 번째로 푸른 냉기가 나를 덮쳐왔다.

그다음은 아마 다 썩어가던 나무통 중 유일하게 온전한 형태를 띠고 있던 나무통이었다. 이건 별 의심 없이 열었다. 다들 무기가 없거나, 힘이 약해 보이길래. 그래서 내가 열었다. 장검으로 통을 뜯자, 푸른 냉기가 다시 나를 덮쳐왔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왜 하필 나야. 왜 또 나야. 어째서?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 괴물이 되어서 흉측하게 변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내가 너희들을 해치는 것도 바라지 않아. 그런데, 왜 나냐고. 왜!!

속으로 절규했다. 울렁거렸지만. 겉으로 티를 내기에는, 나는 아직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조사를 제대로 끝마치고 나서 앙탈을 부리든 떼를 쓰든 울든 말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떼를 쓰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 나도 다 큰 어른이니까.

 

그렇게 조사를 다녀오고 나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친 눈을 감았다. 잠에 드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꿈속에서 또 동생을 보게 되었다.

 

아, 이걸로 몇 번 째지. 백 번은 넘은 듯하다. 동생이 나와서 저를 저주하는 내용의 꿈은.

그러나 이번에는 유달리 자주 나왔다. 3일 밤 건너 나오더니, 이틀에 한 번 꼴로 등장했고. 이제는······ 잘 때마다 동생이 보였다.

패턴은 똑같았다. 바다에 동생이 반쯤 잠겨져 있었다. 나도 바다에 반 정도 잠겨 있었고. 그러곤 동생이 웃는 낯으로 안부를 묻고, 내가 했던 말 중 어느 하나를 꼬투리 잡아서 나를 저주한다. 왜 싸움을 막지 못했어? 왜 물에 떠밀려가는 동료들에게 손을 뻗지 않아서 구하지 못했어? 왜 그랬어! 나는 구하지 못했어도, 저들은 구해야 하는 것 아니야? 아, 그래. 오빠는 아무도 구하고 싶지 않은 거구나! 그래서 엄마 아빠도 그렇게 버린 거구나! 테디는 살인자야! 테디는 방관자라고! ···라고. 백 번은 넘게 꾼 것 같지만, 꿀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그래서 일어날 때마다 늘 땀에 젖어 있고, 머리가 아파왔다. 심지어 이제는 감염 증상까지 겹쳐지는 바람에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

 

 

 

아···

 

 

지친다.

 

 

이제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죄책감, 악몽, 책임감, 절망감, 무력감,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이것들을 회피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젠, 악몽을 꾸고 싶지도 않고, 동료들을 잃는 것을 목도하고 싶지도 않다.

몸은 점차 괴물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어차피 나는 괴물로 변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아, 그래. 그러니, 동료들에게 해를 입히고 끔찍한 몰골로 죽고는 동료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바에얀.

 

 

그냥,

 

 

나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너희에게 그 어떤 피해도 끼치지 않고, 나도 나로서 피곤했던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완벽한 결말이지 않니?

 

 

그래. 너는 최선을 다했단다. 그러니... 더 이상 너와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이 늘지 않도록. 노력하마. 약속할게.

너도 치료받아야지. 나가고 싶다면서. 너 안 죽어. 이상하게 변하지도 않아. 나 못 믿어?

얼마 전까지 대화하던 사람이 이성 잃고 날뛰는 모습은 진짜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응? 걱정은 그만하고 우리 얘기나 해요. 얘기를 하다 보면 근심 걱정 다 사라질 테니까...

..네가 침울해져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군.

같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셔서 고기도 드시고 하셔야지 말입니다~...

내가, 내가 어떻게든 찾아볼게. 그러니까 조금만...

선생님은 열심히 했어어. ...그냥 세상이 선생님한테 너무 심술궂게 굴었던 거야아.

당연히, 두고두고 기억해 드릴 거랍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 거예요.

 

 

아··· 왜 이제야 너희들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지. 진짜, 눈물 나게.

 

 

 

 

 


 

 

 

 

 

-이것이 내가 선택한 나의 결말이고,

나의 마지막 소원은, 내가 괴물로 변하기 전에 사람으로서 죽는 거야.

근데, 아가미가 있는 탓에 괴물로 변하면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기는 해. 게다가, 힘도 무지막지하게 강해질 텐데. 내가 괴물이 되면, 파도를 뚫고 어떻게든 너희에게로 돌아갈 것 같네. ···괴물이 되었을 때, 어떻게든 너희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자신은 없긴 하지만. 뭐, 그러니까 지금 죽으려는 거 아니겠어? 괴물이 돼서 물에 빠지는 건 쓸모가 없잖아. 그러니까, 최소한의 이성이 남아 있을 때라도 움직여야지.

 

 

사랑하는 해군 해적 친구들아.

혹시 내 말이 들리니? 나의 외침이 너희에게 닿았니?

···그럴 리가 없지만서도.

 

 

있잖아. 얘들아.

 

 

나는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수두룩해.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말을 전부 말해보라고 하면, 분명 하룻밤을 지새워 말해야 할 정도로 많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하루가 지나버리면 괴물이 되기에,

 

 

딱, 한 마디만 더 하고, 이제 쉬러 갈게.

 

 

얘들아.

 

내가 미처 살지 못 한 날들까지,

 

 

 

 

 

어떻게든 살아줘.

 

부탁이야.

 

모두, 사랑해.

 

 


 

 

 

 

 

말을 끝마치고서는, 그는 무거운 걸음을 겨우 이끌고는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천천히. 한 걸음씩.

그러다 물이 제 허리까지 차올랐을 때 멈칫.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들이 있는 섬이 보인다.

그 섬을 보고, 그는,

느리게 미소 지었다.

곧 그는 다시 몸을 돌려,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넘실대는 파도 위에서 들은 고개가 완전히 묻힐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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