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O

2024. 5. 9. 13:55커뮤/일댈 · 비댓 · 답멘

 

 

고맙다는 말에, 살며시 탈의 눈을 감아 웃어 보인다. 그럼에도 당신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감사하다 대답하는 말과 달리, 진정으로 풀리지 않은 것이겠지. 내가 뭘 해야 네 마음이 편해질까. 오랜만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깊게 생각하는 건, 그의 성향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워낙 깊게 생각했기에. 그래서, 그 과정은, 늘 최악의 결괏값을 불러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통수를 맞은 후에서야 깊게 생각하는 것을 관두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더라도···. 네가 이 표정인데, 내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잖아.

 

 

"···하나. 손 잡아도 될까."

"포옹 대신······ 을 잡고 싶어. 그러면, 네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질까 해서."

 

 

낮고, 차분하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어쩌면, 평상시, 조금 높고 발랄하며 어쩌면 시끄럽기까지 했을 그의 목소리가 진짜가 아닌··· 지금,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편이 진짜 목소리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그렇게 철저히 숨기는 자는, 당신의 유약함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절망스러운 일들을. 저를 만날 수 있으면, 다시 겪어도 된다는 당신의 말에 잠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왜지. 네게 있어서 끔찍한 일인 것이 아니야?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그런, 아직도. 슬픔에 둥둥 떠서 흘러가 사라지지 않는 아픈 상처를 다시 입는 것일 텐데. 너는··· 도대체 나를 왜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거야. 가슴이 답답하다. 왜일까. 상대방이 자신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오랜 시간 동안 간절히 바라왔을지도 모를 그 마음을 마침내 받게 되는 건데. 무언가, 책임감이 다시 생긴 것 같다. 이러지 마. 난, 네게 책임감이 생기기에는. 너무나도 유약하다고. ······허나, 이미 당신이 저를 믿어버린 것이라면. 그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그때처럼.

 

그는 눈을 찌푸린다. 다만 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탈 속의 눈이 찡그린 것이니. 당신의 어깨너머로 다시금 무언가가 보였다. 애써 무시하려 다시 시선을 당신에게로 옮겼다. 허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그것은, 대화 내내 심기를 거스르게 했다.

 

인형 탈에 대한 질문. ···늘 그랬듯이, 평범하게 대답해 보자. 

오, 로웬.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란다. 솔직하게 대답할게. 그러니까, 그런 눈빛으로 날 보진 말아 줄래. 부디.

 

"응, 하나를 만나기 전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탈을 써왔어. 그래서··· 자, 봐봐. 탈에 조금씩 흉이 져 있지? 나름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는 증거야. 충분한 답변이 됐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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