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T

2024. 5. 10. 00:37커뮤/일댈 · 비댓 · 답멘

 

 

"······역시, 슬프지 않을까요?"

 

죽음에 슬퍼해준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 얼마나 와닿는 말이 됐을까.

 

그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쩌면, 당신이 가늠하기 어려울 긴 세월을. 제 동료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에 비해서라면, 비교적 짧은 시간이긴 했으나. 당신에 비해서라면, 분명히 기나긴 시간일 것이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애도는 빠른 속도로 흩어졌으리라.

이유는 간단했다. 곁에서 수많은 죽음을 봐왔기 때문이다. 사고에 의한 사망, 물에 의한 사망, 타인에 의한 사망, 스스로 선택한 사망과.

그가 끔찍이도 싫어하고, 어쩌면, 유일하게 아직도 두려워할.

질병에 의한 사망.

 

-물론 직접적으로 두려움이 다가온 것은 아니다. 다만, 제게 있어 유일하게 소중했던 사람이 오래전 병으로 인해 사망했던 것이었다. 고통 속에서······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 어떤 손짓도 할 수 없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는 멍청하게도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는 이를 살릴 수 없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버니맨의 진짜 두려움은.

제가 죽는 게 아닌, 타인의 죽음.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저의 죽음으로 인한 타인의 망가짐과,

죄악감.

 

그 죄악감은 그를 여전히 옭아매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지 못했다는 단순하고도 치명적이었던 그 사실은 목줄이 되어 한평생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중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는 모든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에게 있어서 책임감이 지나칠정도로 강해질 터다. 굳이 책임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긴 하다. 각자 생명은 각자가 지켜야지, 다만. 그는 쓸데없이 이타적이었고 필요 이상으로 한 번 사랑한 상대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 태어나서부터, 의식이 생겨서부터. 지금까지. 먼 훗날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그는 당신과 거리를 둔다.

일부러.

자칫하다간, 당신을 사랑하게 되어 아끼게 될까 봐.

당신이 저를 믿는다는 것을 알아도, 큰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는 사람으로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고, 너무 많은 슬픔을 얻었으며,

-그리하여 당신에게 신뢰를 주고 싶지 않으니.

 

슬프다지만, 그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날 이후로 한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당신 하나로 인해 이 올곧은 기둥이 무너져 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

만약,

당신이 이 기둥을 무너뜨리게 된다면.

제게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정중앙의 기둥을 부수게 된다면.

 

그는 모든 게 두려워질 테니까.

당신도,

당신을 잃는 것도.

세상도.

 

전부.

 

'그래서야. 그냥, 그래서. 그러니까, 부디 날 원망 말아 친구. 네가 이해할 거라 믿어.'

 

안타깝게도 그는 이기적이다. 저 안개 같은 생각을 보라. ······그는 이기적인 자신을 당신이 이해하길 바라고,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웃으며 상황을 무마시킨다. 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헤실헤실 웃고. 넘기고. 감정적으로 굴고. 타인은, 그리고 당신은 그 감정과 오버 액션에 넘어간다.

'그치만, 이 썩을. 내가 이렇게 해서 살아남았잖아. 그거면 된 거 아냐? 제발 엿 같이 굴지 좀 마. 죽여버린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그의 생존 방법이자 다방면의 죽음에서 회피하는 법이었다.

'그니까. ······윽, 흐윽. 그니까. 제발 나 좀 멀쩡히 살게 해달라고. 테라. 제발. 나, 난. 살고 싶어.'

 

"다정한 사람은 잊기 어려운 법이잖아요."

 

아, 당신의 말이.

왜 오늘따라······

 

 

유난히 다정한 걸까.

그러니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게 해 줘, 부디. 또다시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 겪어도 멀쩡히 살아갈 만큼,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지. 다정한 사람은 잊기 어려울 거야. 내가 너를 영영 못 잊을 것이기도 하고. 으핫! 그러니, 행여나라도. 내가 너를 잊는다는 걱정은 하지 마. 너는 내 마음에 한평생 남아서, 살아 숨 쉴 테니까 말이야! 내 사랑하는 친구, 테라 밀포드."

 

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평소처럼······ 평소처럼.

 

그러곤,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마신다.

 

 

'커뮤 > 일댈 · 비댓 · 답멘' 카테고리의 다른 글

02-T  (0) 2024.05.11
02-O  (0) 2024.05.10
01-O  (0) 2024.05.09
조각을 손으로 끌어 잡아서.  (0) 2024.04.03
잠겨버린 당신의 조각은  (0) 202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