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8. 12:49ㆍ커뮤/일댈 · 비댓 · 답멘
네 이름은 지금부터 마카리아란다. 다만 세상은 위험하니, 이 이름 대신 플러스라는 이름 또한 가지고 살아가렴. 명심해. 너는 플러스이자, 마카리아야.
독이 담긴 약병을 따, 입에 머금은 후 그대로 당신에게 넘겼다. 허나 완벽하게 넘길 순 없었던 걸까. 미미한 독의 성분이 내 목을 타고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어려서부터 약에 노출된 터라, 독에도 강한 편이니 이 정소의 극소량으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천천히, 매우 느리고 약하게 아파올 것이다. 독성이 강한 약이니, 금방 전신에 퍼져서 나의 몸을 단단히 조여 오겠지. 하지만 괜찮다. 지금 내게 칼을 겨누고 있는 당신이 있으니까. 그래. 우리는 이제, 서로가 서로의 마지막 타겟인 것이다.
당신이 팔을 떼자, 직감한다. 이제 진짜로 칼이 내 몸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겠구나.
많이 아프려나.
칼이 등에 꽂히자, 짧은 탄식과도 같은 소리를 내놓고는 당신에게로 기울어진다. 그러다 겨우 다리로 바닥을 짚어, 당신에게로 넘어지지 않도록 버티고 버틴다. 날카롭고 뜨거운 것이 몸의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잔뜩 뇌를 헤집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우 난폭스러운 고통은 이 작은 몸뚱어리에서 날뛰는 법을 멈추는 걸 모르는 아이처럼 돌아다닌다. 시야가 흐려졌다가, 다시 눈 깜빡 하니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러다 다시 흐려지고, 원래대로 오고. ······다만 이것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흐려지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게 특징일까.
이윽고 칼이 전부 몸속으로 들어오면, 더 이상 두 발로 바닥을 버티고 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물처럼 쏟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깨에 올린 당신의 팔을 잡아, 제 머리 옆 쪽으로 두어 한 손으로 깍지 끼고. 나머지 손으로는 당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비틀거린다. 제삼자가 보면 마치 어느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엑스 씨, 사실은 저,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춰 보고 싶었어요. 고통에 짓눌린 문장은 띄엄띄엄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진실되고 속삭이는 듯한 그 말은 당신에게 여러 의미로 전달됐을 터다.
당신과 눈을 맞추었다. 그 무엇도 비추지 않던 새까만 호수에 내가 비추어진다. 플러스가, 마카리아가 비추어진다. 점점 가빠오는 숨과 함께 그 눈동자 속에서 비추어진 형태는 서서히 그 모습이 흩어진다. 기체처럼, 액체처럼. 서서히 부품이 사라지는 장난감처럼. 다시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아, 숨이 아니었나. 입에서 붉은 액체가 툭툭 흐르더니, 점차 그 흐르는 양이 많아진다. 하지만 닦지도 않았고, 막지도 않았다. 나의 이 양손은 당신만을 붙들고 있기에도 모자라니까. 그러다 당신의 허리를 감싼 팔을 잠시 풀어, 손으로 안대 한쪽을 내린다. 그리고 다시 그 손은 당신의 허리에게로. -당신을 붙잡고서, 천천히 무너지면서 느리게 빙글 도는 그 몸짓의 주체는 형태가 녹아가는 채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 없는 새하얀 눈과 붉은 눈이 동시에 응시한다. 차가워 보일지도 모르는 색일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한 눈짓은 여전히 춤을 추고 있었다. 있잖아요, 엑스 씨. 당신은 이름이 있어요? 죽어가는 숨을 가진 주제에 여전히 말을 내뱉는다. 다만 아까 했던 말보다 더 뜨문뜨문 내뱉었고. 엑스 씨, 엑스 씨. 재밌는 거 하나 알려드릴까요. 쿨럭, 기침이 나오자 자동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제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각혈이다. 붉은 액체는 더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칼에서부터 비롯된 열감은 몸 전체를 덮은 지 오래였다. 사실상 지금 이렇게 다리를 곧게 뻗어 땅을 딛고 서 있는 게 기적이지. 있잖아요, 엑스 씨. 진짜 제 이름은 마카리아예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래요. 여전히 그는 당신의 손을 깍지 끼고, 허리를 둘러 잡으면서, 왈츠를 추고 있다. 그런데 이 신이 무엇을 다스리는 줄 알아요? 평온한 죽음이래요, 평온한 죽음. 아까보다 더 힘이 빠진 소리처럼 들릴까. 아니면 병자처럼? 죽음을 앞둔 노인처럼? 그 무엇이든. 그가 죽어가는 소리는 너무나도 잘 들릴 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 당신을 바라본다.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요. 저를 이름으로 불러주실 수 있나요? 어렸을 적 불리고, 여태껏 불리지 않았던. 진짜 이름. 존재하기만 하고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그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모든 것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만약, 당신에게 이름이 없다면. 그렇다면 이름이 아니라. 사랑해요, 내 사람. 사랑해요. 사랑해요. 진심을 담은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사랑을 속삭이다, 당신을 붙잡은 채, 제 뒤 쪽으로 넘어진다. 이미 깊숙하게 들어왔던 단도가 땅바닥에 부딪히며 다시 몸 안에서 난동을 부린다. 땅에 뒹굴며 다시 크게 각혈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호흡이 가빠오다가, 흐려진다. 제 옆 쪽에 같이 넘어진 당신을 겨우 고개를 돌려 마주 본다. 죽더라도. 계속 눈을 떠 당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을 감지 않는다.
우리.
영원히 춤을 춰요.
끝나지 않을 왈츠와 함께.
초점 없는 두 눈은 영원히 당신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