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2024. 8. 20. 20:26ㆍ커뮤/로그
"우리가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고요 속에서 내뱉은 첫마디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사태가 처음으로 터진 날에 비할 수도 없을 만큼 늘어나버린 좀비의 수들. 저 중에 친구였던 것들도 존재하는 걸까, 싶은 생각에 더 내려다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제 양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다가, 다시 걸음 옮겨서. 3학년 교무실 앞에 도착한다. 손에는 쇠파이프를 단단히 쥔 채로. 내가 도대체 여기서 무얼 더 할 수 있느냐고 허공에 대고 묻다가 관두었다. 더 이상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질문을 한들 대답으로 돌아오는 것은 끔찍하리만치 가혹한 현실뿐이니까. 학생 회장은 힘이 없었고, 부회장은 인간쓰레기 그 이하도 되지 못하는 존재였으니.
나는 당신들이 바라는 대로. 얌전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좀비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 미래가 결국 좀비가 되는 엔딩이라 한들, 그럼에도······ 저항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싶었다. 걸음을 옮겨서 3학년 교무실 내부로 도착하고, 쇠지렛대를 떨구어 둔다. 그러고는-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수기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부수었을까. 다시 쇠지렛대를 들고는 어제처럼 막무가내로 휘두르기 시작한다. 만약 이 사태의 원흉이 누구인지 밝혀진다면, 이 수준의 몇 배로 그들에게 휘두르리라. 몇 번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커뮤 >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길의 끝 앞에 (0) | 2024.08.22 |
---|---|
떠나간 삶을 기록하며 (0) | 2024.08.21 |
천천히 내려앉는 (0) | 2024.08.06 |
다시, 熱帶夜 아래서 (0) | 2024.07.16 |
後悔의 生에서 (1) | 2024.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