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己的 贖罪

2024. 3. 30. 15:01커뮤/로그

 

 

 

 

 

(해당 글에서는 자기혐오, 죄책감, 살해, 죽음, 무력감, 영구상해 등등에 대한 트리거가 있으니 읽기 전 주의 바라십니다. 이에 대한 트리거가 있으시다면, 글을 읽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기적 [利己的]: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

속죄 [贖罪]: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행동 따위로 비겨 없애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것만 보고 자라왔다.

고급지고 부드러운 옷,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 넓고 깨끗한 집과 누가 닦아놓았는지 모를, 늘 광을 내던 피아노까지.

모두에게 인정받은, 그 물려받은 눈으로··· 예쁜 세상만을 보고 왔다.

 

부잣집 귀한 딸. 그게 한서현이었다.

물론 겉치레였을 뿐이지만······ 그는 부잣집에서 사는 것도 맞았고, 귀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것도 맞았고, 딸이기도 하니까. 어느 하나, 사랑을 제외하고는, 부족함 없이 살아왔던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본 것 중 가장 끔찍한 것을 보고 있다.

 

학교에서, 사람을 죽인다.

 

전국에서 온갖 재능 있는 학생들이 지원한 고등학교에서, 진정으로 완벽하고 재능 있는 자들만을 걸러내기 위하여, 죄 없는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는, 살해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적어도 한서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물론, 평범한 개념의 실기 시험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조금 더 완벽하고, 잘난 자들에게 더욱 지원하는 것. 그들이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뒤떨어지는 이들이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니까. 그는 당연하다고 느꼈으니까. 그래. 이 세상은, 재능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으니까. 완벽한 사람만이 살아남으니까. 이 명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살아왔으니.

 

하지만······ 이 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로부터, 학교가 이상해지면서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이후에.

진정한 사람과 살아가는 방식이 무엇인지 깨달은 후로부터는, 그들에게 정이 들었고.

 

모든 이가 존중받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힘을 써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다짐은 그를 비웃듯이 손 끝에서 사라졌다.

그는 힘을 쓸 수 없었고, 무력했다.

그들이 손가락 짓 한 번에 스러지는 것을 목도하고도,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친절하고 유쾌했던 최설아를 잃었다.

소심했지만 순수했던 진유수를 잃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던 이한울강물결을 잃었고,

희망을 심어주고 아주 다정했던 민영태를 잃었다.

 

나는 여기서 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잃어야 하는 거야.

 

울음이 차오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표출할 수 없었던 억눌린 감정들을 혼자서 흘려보냈다.

나는 왜 행복해질 수 없는가. 왜 늘 스스로를 탓해야만 하는 것이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며, 내가 바라는 대로 살아갈 수 없는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살려낼 순 없었던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하고는, 죄악감에 서서히 잠식되어 간다.

아주 무력하게. 발 끝과, 손 끝으로부터. 천천히, 야금야금······.

그렇게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될 무렵, 그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이렇게 멍청하게 가만히 있을 바에얀······

 

그들에게 속죄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해 사과하고, 그로 인해 그들이 죽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가장 완벽했던 것을 봐왔던. 그들의 죽음을 고스란히 목격한, 그 눈을 없애버림으로써.

 

-물론, 이것은 아주 무식하고 멍청한 방법이다. 세상에, 죄책감 하나 때문에 자신의 눈을 없앤다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완벽하지 않은 행동인가. 차라리 죽는 것이 더 깔끔하지 않을까? 자신의 목숨이 고귀하다는 건가? 한서현 답지 않은 행동이다.

······그러니까, 그는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완벽에 반대되는 행동을 해,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만듦으로써.

죽지 않고 살아,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것이 열일곱 한서현이 택한 이기적 속죄법이다.

 

 

 

 

"···아아.

이렇게, 이기적으로. 속죄를 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멀쩡히 삶을 이어나갈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이번만 마지막으로 나의 이기심을 이해해 주지 않을래.

 

완벽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완벽함에 반대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으로 속죄가 될까, 싶어서.

전혀 되지 않겠지만.

아······

 

미안해, 모두."

 

 

생[生]이 죄악이 될 줄 몰랐는데.

 

 

 

 

 

 

 

그러고는······ 깊게 숨 들이쉬더니, 날카로운 칼날을 자신의 왼 눈 안에 깊숙이 찔러 넣습니다.

고통은 아주 짧은 시간에 그의 몸 전체를 덮어갑니다.

하지만, 그 육체적 고통보다는,

속죄해야 한다는 다짐이 더욱 컸기에.

 

무력하게 피와 섞인 눈물을 흘려보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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