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0. 02:16ㆍ커뮤/로그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죽은 사람인 양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해가 뜰 무렵, 창문에 가까이 다가간다.
고요하다.
마치 모두가 죽어버린 것 처럼.
싸늘하고, 차가웠다.
너무 차가워서 마치 그 마저도 죽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던 도중, 새 떼가 이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렇게 많은 새들이 단체로 이동하는 건 처음 봤는데. 아, 진짜. 세상이 망할 때가 되긴 됐나보다.
창틀을 꽉 쥐던 그때, 바깥에서 날카롭고 높은 어떤 사람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닌가. 이건, 절규에 가깝나.
창문에 귀를 대었다. 지성체들이 바꿀 수 없는, 정해진 운명에 의해 고통에 빠진 소리가 세세하게 들려왔다. 귀를 떼었다. 죽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그들을 보고 느낀 점으로는, 하나. 이렇게 사회가 혼란스러운데, 대체 우리들을 보호해야 마땅할 군경은 왜 이리도 소극적인 것인가. 이런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어째서 그 아무도 우리를 돕지 않는 것인가. 그들도 같잖은 공포심에 빠진 것인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멍청한 벌레들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둘째. 사람들은 너의 생명을 왜 존중해주지 않는 것일까. 왜 너를 세상의 골칫거리 따위로 취급하는 것인가. ···자기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자가 너와 똑같은 제물이 되면, 자기들도 울며불며 사람들에게 저항했을 것을. 아, 소중한 자가 없어서 그러는 건가? 나와 같은 행복감을 누린 적이 없어서. 아니면, 공감능력을 상실한 것인가. ······같잖은 새끼들이. 아, 그냥. 다 죽이고 나도 따라 죽을까. 이런 역겨운 세상에서 너와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너네 집 불 탔다더라.
당신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니, 무슨 소리야, 이게? ... ...불이 탄 집. 잠깐, 그럼 우리 할머니는. 집에 할머니를 홀로 두었어. 아니, 잠시만. 옆 집 아주머니랑 같이 계신다고 했었잖아. 이럴 때가 아니야. 할머니한테 연, 연락을 해야 해. 아닌가? 핸드폰을 잃어버리셨을 수도 있잖아. 그럼, 아주머니한테. 아, 나 아주머니 연락처 없는데. 아닌가, 있나? 어떡해야하지. 누구한테 전화를 해야해. 우리, 우, 우리 할머니 안부는 어떻게 물어. 할머니. 멀쩡한 거 맞아? 괜찮을까? 어떡하지. 할머니가 나 때문에 죽었으면, 어떡해. 이럴, 순 없잖아. 왜? 왜, 내 사람들이 다쳐야 하는 거야. 어째서.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무표정한 얼굴 위를 감싸게 된 눈물과 함께 사고회로는 정지했다. 진즉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제정신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제정신이 아닌 생각이더라도. 그는 그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이 하얘진다.
하얀 세상에서 나는 겨우 너를 보았다. 엉킨 채 풀어진 머리카락. 텅 비어서, 자신의 사랑조차 받을 수 없을 듯한 당신의 눈동자. 무엇보다, 당신의 그 위태로운 웃음은·········
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허나 마음에 동요가 크게 일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너와 나의 기분과 생각이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감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당신이 제게 반지를 빼보이는 것을 허망한 표정으로 본다. 지은우. 너 뭐 하는 거야? 그거, 어떻게 맞춘 반진데. 1주년으로 함께 맞춘 반지였잖아. 밤 새가면서 전화하고, 네가 그 다음날에 우리 집에 와서 함께 대화하면서 디자인 전부 고민했던 거잖아.
너,
대체 지금 뭘 하려는 거야.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미래를 바꿀 수 없었으니까.
무력하니까.
난 애초에 그런 놈이니까.
그렇지만, 내가 네 앞에서도 이딴 모습이어야 해? 제발. 지은우. 나는 네 앞에서만큼은 무력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왜 이러는 거야. 그러지 마. 하지마. 미처 네게 하지 못했던 말은, 곧 울음으로 번진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아주 무겁고 뜨거운 것이 울렁거린다.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힘들어, 나. 지은우. 왜 그러는데. 왜. 이번만 멍청하게 살아주면 안되냐.
그럼에도 나는 너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승우야. 이젠 정말, 그만할까? 라는 너의 다정하고도 차분한 말은 나를 너무나도 아프게 만들었다. 차분하고 이상할 만큼 평소보다 다정한 너의 그 얼굴, 얼굴의 한 조각 조차도 내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것이다. 아, 은우야. 너랑 행복하고 싶은데.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랐던 건데. 왜 이렇게 사소한 것조차도 어려운 거야. 은우야. 내가 그냥, 다 죽일게.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니까, 우리 조금만 버티면 안될까? 물론, 힘든 거 알아. 알지만, 그치만. 지은우. 내 마음 알잖아. 응? 은우야. 은우야·········.
이 수많은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속을 비집고 몇 마디가 겨우 튀어나왔다.
난, 너랑 살고싶어.
너랑 떨어지고 싶지도 않아.
그만하자는 소리 하지도 말고. 네가 지금 그렇게 웃는 거······.
곧 죽을 사람의 표정이잖아.
차라리, 나랑 도망가자. 아니, 그냥 집 안에 콕 박혀있자. 응? 제발·········
나,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당신이 건네는 반지의 뜻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여전히 반지를 집어들지 못했다.
무력하게 힘 없는 손으로 당신을 붙잡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