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8. 15:08ㆍ커뮤/로그
언젠가 너는 그랬다.
환히 웃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건네왔고,
유쾌하게 굴었다.
언젠가 너는 그랬다.
나와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금방 다시 온순해져서는
그런 낯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언젠가 너는 그랬다.
요리를 만들어서는, 내게 내밀었다.
먹어보라고.
한 입 정도는 먹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는.
해봤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후회를 한다고 한들 네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언젠가 너는 물었다.
똑바로 나를 쳐다보면서,
그 노랗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를 물었다.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라니. 그것을 내게 물어서 뭣에 쓰려는 건가. 이상하고, 궁금했다.
살아남은 자로서,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낸 것이 없었다.
저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달라는 유언도,
곁에 끝까지 있어달라는 유언도,
행복하라는 유언도.
그는 살아남은 생명의 의무를 제대로 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대답은 했어야 했다. 그냥, 어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너의 질문이었으니까. 굳이 안 하고 넘어가면, 수상쩍게 보겠지. 라는 생각에서였다.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는······ 놀랍게도 별거 없어.
그냥, 살아가는 것.
불행하든 행운이 넘치든. 끔찍하게 괴롭든 행복에 겨우든······
죽은 자를 위해, 그 몫까지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그것이 죽은 이에 대한 유일한 속죄법이라고 믿고."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답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네 대답은.
"살아남았으니까 그 몫까지 내일을 기대해야겠지."
너는 턱을 괴고서, 이어 말했다. 버니맨은 어른이 됐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는걸, 라고.
네 말의 뜻을 영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의 방법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위해 살아가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인가? 그랬으나, 그냥 넘어갔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에도, 그냥 넘어갔다.
조금이라도 너를 더 살폈어야 했던 걸까.
주책맞을 정도로 네게 이것저것 캐물었어야 했던 걸까,
···죽을 거냐고 물어봤었어야 했던 걸까.
내가 무엇을 실수했지?
또다시 아끼던 자를 두고 삶을 이어나가는데.
또.
다시?
다시.
다시······.
-그러나 끝없는 후회의 방황 끝에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는 이미 죽었고, 존재하지 않는걸.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네게 아무리 다정한 말을 해준다고 해도, 너에겐 더 이상 들을 귀가 없다.
이전에 네가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식사를 차린다고 해도, 너에겐 더 이상 먹을 입이 없다.
부서진 토끼탈을 어떻게든 복구시켜 웃긴다고 해도, 너에겐 더 이상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자기만족용일 뿐인 하나의 작은 추모.
내가 네게 흰 꽃을 두고 떠나도.
너는 이를 볼 수 없겠지.
만질 수 없겠지, 맡을 수 없겠지.
그럼에도.
백 번의 말 중 단 하나의 말이라도 네게 닿을 수 있다면······.
네게 고마운 게 많았노라, 라고.
말을 건네고 싶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용일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말이 아주 조금이라도 네게 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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