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4. 01:13ㆍ커뮤/일댈 · 비댓 · 답멘
"······모든 게 두려워서. 그냥, 그래서."
손이 천천히, 떨려오기 시작한다. 최근 들어 그가 악몽을 더 자주 꾸게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소중했던 아이가 제 앞에서 저를 잡지도 못한 채 피나 흘리며 죽어가는 꼴을. 그리고, 그 모습은. 당신으로 바뀌어버린다. 단순한 죄책감이다. 그래놓고서는, 멀쩡히 당신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대화를 하면서··· 그래. 당신은, 저를 그렇게 떠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쳐가는 육신과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 때문에. 두려워진다. 당신이 제 이름을 부르자 퍼뜩 눈 뜨며 당신 쳐다본다. 잔뜩 붉어진 눈을 깜빡이며 보다가, 이어지는 말에 숨이 멈춘다.
시체 한 구, 팔목 하나, 손가락 한 마디.
그리고, 자신을, 마치 제어하는 듯한 말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테라.
······그는 새로운 두려움에 잠식된다. 어떤 단어로 결정짓지 못할 그 두려움에. 당신의 과거가 끔찍하다는 것을 인지함과 별개로. 자신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 무섭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도 두려우니까 이러는 것일 테니까. 내가 죽어버리는 게 당신도 두려운 거니까.
복합적인 감정이 가득 밀려온다. 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당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당신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나, 저를 떠날 것 같은 두려움, 그런, 수많은 두려움들이 한 데 섞여서 어지럽게 뭉친다.
몸에 힘이 풀려, 당신 앞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여태껏 쌓인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순간적으로 크게 밀려온 탓이었다.
그러고선,
꼴 사납게 엎드리는 모습이나 보이는 것이다.
당신의 발목을 잡으려다가 잡지 못한, 눈에 띄게 덜덜 떨리는 손은 계속해서 허공에 맴돌았다. 그는 다만 당신에게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선명히 들렸던 한 마디.
"······네게 확신을 주고, 믿음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 되고. 싶었, 싶, 싶었어요."
이후로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과 자기 비하만 반복할 뿐이었다.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목소리의 톤도 높아지는 것이.
······아마 트라우마에 눌렸을 것이다. 이전에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구타까지 당한 전적이 있었으니. 상대가 당신이라고 해도, 트라우마가 올라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