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T

2024. 5. 15. 19:35커뮤/일댈 · 비댓 · 답멘

 

 

슬슬 이 정도 되니까, 별 것에 다 지쳐버린다. 웃을 힘도, 반응할 힘도. 그 와중에 생각난 것은,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당신과. 평범한 일상을. ······원래도 그랬던 것처럼, 같은 시간에 맞춘 것처럼 만나서, 카페로 들어가고. 캐모마일 차와,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버터 쿠키를 먹으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나 나누는, 그런 일상을.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우리, 멀쩡히 나갈 수 있을까- 였다. 당신과 나가고 싶다. 어느 날 당신의 손을 깍지꼈던 그때처럼,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으면서······. 어려울까. 너는 나와 함께 걷고 싶을까. 만약 네가 나와 걷고 싶다고 하면,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나는 이제, 어딜 가든 네가 있어야 하니까. 

 

아니라는 말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시 당신을 쳐다본다. ···거절인가. 아닌데, 이건. 거절을 할 수 있을 만한 말이 아니었는데. 질문이 아니었잖아. 무슨 생각인가 싶어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다, 몸이 떨어진다. 당신이 그를 본다. 동그랗게 뜬 눈만 깜빡이면서 그도 당신의 얼굴을 본다. 아,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닐 텐데. 급격히 부끄러워져 시선이나 피하려다, 넥타이에 손을 대자. ······더 당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넥타이 가지고 뭘 하려고 저러는 거지. 쓸모도 없을 텐데. 당황한 듯 제 뒷목을 쓸어내린다. 

 

증거라는 당신의 말에, 잠깐 심장이 철렁했으나··· 어떻게든 견뎠다. 그래, 지금 죽을 수는 없잖아. 죽으면 안 된다. 죽으면 안돼······ 기필코. 나가게 될 때까지만 맡아둔다는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네 마음이 편안해지면··· 나는 좋아."

 

 

제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당신이 일어나자, 저도 당신 따라 어렵사리 몸 일으킨다. 그러다, 다시 주저앉았다. 아까 힘이 다 빠져버려서 그런 건가. 머쓱했지만, 웃는 낯으로 당신 본다. 꼬리뼈 부근이 아프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내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겠지. 고맙다는 그 목소리에는 싱긋 눈웃음 지어 보였다. 내가 더 고마운 걸. 못 볼 꼴 다 보여줬는데도, 내 곁에 남아있는 게.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게. 

 

 

"나도 고마워, ······리오."

 

 

조금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다시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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