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8. 23:58ㆍ커뮤/로그
(*불안 증세, 폭력 행사 및 구타당하는 묘사, 혈흔 묘사, 상처, 처절함, 우울감, 불안감, 자기 비하, 공황발작 상황 묘사, 반복됨 및 띄어쓰기 없는 빽빽한 글자, 죽음과 자살 및 병에 대한 언급, 흉기에 찔리는 상황의 묘사, 기타 등등. 많이 주의해 주세요. 글이 상당히 우울하며, 불안한 형태입니다.)
언제부터였더라,
죽음을 바라왔던 때가.
멀고 먼 옛날, 그러니까- 태어났을 때는, 죽음과 삶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샌가부터 나는 의식이 있었고, 살아갔으니까.
나무에 맺힌 열매를 따서 먹고, 들짐승을 잡아먹었다. 지나가는 곳곳에는 다양한 색을 소유한 꽃들이 느릿 춤추고 있었고, 여러 형태를 가진 풀들은 바람에 의해 좌우로 흔들렸다.
조금 더 넓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매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는진 모른다. 그저 살다 보니 살아졌고, 살 이유가 없어도 구태여 죽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언제였을까.
한 어린 소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의 삶 전부를 바꿔버릴 줄은 더욱 몰랐고.
"[있잖아, 있잖아. 혹시 너는 이름이 없어?]"
"[···그런 건 없는데. 있어야 할 필요도 모르겠고.]"
"[아! 그게 뭐야! 이참에 내가 지어줄게! 이름은··· 이걸로 할까? 나름 멋있어 보이는 이름이지?]"
"[응, 그러네.]"
"[성의 없어! 그리고... 성씨. 성씨도 없으려나? 그래애, 그렇다면. 내 성씨를 붙여줄게! 저 하늘을 봐봐!]"
"[하늘은 갑자기 왜.]"
"[초승달이 떠 있지? 저것과 같은 뜻이야, 내 성씨는! 그럼 이름도 성씨도 정해진 겸··· 한 번 불러볼까!]"
"[내가? 내 이름을?]"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자, 어서 말해봐.]"
"[알겠어, 성질은. ······내 이름은,- 에드워드 크레센트.]"
"[좋아! 완벽하네!]"
"[이거 봐라!]"
"[이게 뭔데, 로웬? 꽤 귀엽게 생겼네."]
"[토끼를 닮은 널 위해 특수 제작한 토끼 탈이지!! 어때, 대박이지?]"
"[······네가 직접 만든 거야? 대단하네. 그거, 로웬이 쓸 거야? 그렇다기엔 좀 커 보이는데.]"
"[아니! 이건 내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아저씨가 쓸 거지!]"
"[아, 어. 으엥? 이게 뭐야. 갑자기 씌워졌네···.]"
"[하하! 잘 어울린다! 이렇게 된 이상··· 별명이라도 붙여줘야겠네! 토끼 탈에다가 아저씨니까, 버니-맨. 어때?]"
"[그게 뭐야. ···이상해, ㅋㅋ.]"
"[뭐?! 지금 내가 완전 열심히 생각해 낸 건데!!]"
"[아, 아야. 아하하, 로웬! 잘못했어. 그만 때려, 이제.]"
"로웬, 로웬. 제발. 정신 좀 차려봐. 응? 아, 잠, 잠깐만. 아니야. 말하지 말고. 입도 열지 마. 피가 더 나올 거야. 로웬, 제발. 내가 살려줄게. 내가 널 살릴 수 있어. 나는 널 살리고 싶어. 아니야, 눈 감지 마. 로웬. 제발, 제발. ···네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로웬. ...로웬? 잠시만. 아, 아니야. 로웬. 로웬!! 눈 떠, 눈 감지 마. 지금 자면 안 돼! 로웬!! 로,- ······아, 아. 윽, 제발. 눈 떠, 로웬. 으, 흐윽. 눈 좀 떠봐. 잘못했어. 잘못했어···. 로웬. 로웬······."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진 알고 있지?"
"···그딴, 거. 몰라. 이, 망할 새끼들아."
"이 새끼가, 그래도 정신을 안 차리고."
"커헉! 컥, 윽. 허억. ···하아. 하, 웁. 윽. 그, 그만."
"······야, 그거 좀 가져와 봐. 이 새끼, 뿔이라도 잘라가야겠다. 인간을 두려워하라는 흔적을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냐?"
"안, 아니야. 잘, 잘못했어요. 제가. 죄, 죄송합니다. 죄송,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 살···-"
"너는 오늘이 제삿날이다, 이 괴물 새끼야. 더 이상 인간을 해치지 마라."
···어린 소녀 하나를 만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깨달았다.
행복함, 감사함, 배려심, 다정함, 따뜻한 마음, 이해, 믿음, 사랑···.
마음이 어떤 것으로 가득 차올라 잔뜩 부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이 환해지고,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반갑게 인사를 해주는 그런 기분.
허나 세상은 내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언제 허락했냐는 듯이, 내 삶의 전부였던 아이가 생명을 잃어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지럼증을 겪고, 두통이 잦아지며. 더 자주 내 품에 안겨 울었고 각혈을 하는 날이 하지 않는 날보다 훨씬 많아졌다. 대체 무슨 병을 앓길래 이러냐고 더 물어봤는데, 시한부랜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라 물어봤는데, 그때 그 아이는 생긋 웃기만 하였고. 알려주지. 알려줬으면, 내가 더 네게 많은 사랑을 주었을 텐데.
어느 날에는 아이가 오지 않았다. 평소에 나와 아이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났기에. 혹시라도 길을 잃은 건가, 유괴를 당했나, 의식이라도 잃었나, 싶어. 인간들이 사는 마을 근처에서 계속 아이를 찾아다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풀숲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미약한 정신만을 붙잡고 있는 아이에게, 다급하게 수화로 물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괜찮냐고. 아이는 여전히 대답 없이 생긋 웃기만 했다. 손가락 까딱 할 힘도 없었던 거겠지. 그렇게, 피가 낭자해진 그 어린아이를 안고서는,
인간들이 사는 가장 근처의 마을로 처음 발을 딛게 되었다.
너무 밝은, 눈이 아픈 빛. 시끄러운 주위, 높게 세워진,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 복잡한 길거리, 그 모든 것들이 새로웠고 혼란스러웠다. 알 수 없는 것들이 시선을 가득 메웠지만, 인간이 인간을 더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 마을의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쏟아진다. 두려웠다. 마치, 저를 죽일 듯한 그 눈빛이. 그리고,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 사람이 소리치길.
괴물이다!!
괴물? 괴물이 무슨 단어지.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저렇게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일까. 행여나 아이까지 해코지할까 봐, 아이를 더 단단히 붙잡고 도망치려 했다. 무용지물이었다. 건장한 사람들이 떼로 붙어 나를 붙잡았고 아이를 데려갔다. 그리고 유난히 아이를 더 아끼는 듯한 한 사람이, 아주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날카로운 무언가로 얼굴을 그었다. 순식간에 오른쪽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뜨거움은 계속해서 얼굴로 파고들어, 내가 더욱 몸부림치게 했다. 이건 대체 무슨 감각이지? 무슨 기분인지 모르겠어. 그렇지만, 뜨거워. 아파! 이런 건, 싫어. 계속해서 몸부림을 강하게 치니, 아예 무언가로 나를 묶어버렸다. 그러고선, 아주 어둡고 좁은 공간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리고······.
머리가 아파온다. 죽을 때가 되면 주마등이 스친다지만, 이렇게까지 끔찍한 것이 다시금 나를 두드리게 둘 순 없어, 급히 생각을 관두었다. 그래, 과거가 이제 무슨 의미겠어. 어차피 여기에 과거 없는 사람 없고,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적당히 나대. 이제 좀, 죽어. 제발! 살아있을 가치도 이유도 없는 주제에. 살아갈 이유. 이유······.
아니야, 살아갈 이유는 있다. 나는 살아 돌아갈 것이라는 약속을 했고, 그것으로 어느 누군가에게 웃음과 믿음을 안겨주었는데. 지금 그 믿음을 깨버리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사랑하는 이가 죽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그 끔찍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의 선택은 너무나도,
나약해,
에드워드 크레센트!
알고 있어. 내가 유약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아. 그러니까, 이러는 거잖아.
타인을 살릴 수 없다는 무력감은 너무나도 강하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이 강하게 다가왔겠지만, 나는. 나의 세상, 나의 전부였던 그 아이를 눈앞에서 살릴 기회도 놓치고 허무하게 떠나보냈다. 그때의 끔찍했던 모든 감각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더니, 기어코. 나를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붓는 기분이 든다. 함선 안에 작게 나있는 창문에서는 수십 개의 눈들이 나를 지켜보는 것 같고, 아무렇게나 굴러가는 천 쪼가리는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옷과옷이쓸리는소리도 귀를찢는것같다. 심해속에존재하는모든해양생물이나를뚫어지게쳐다보는것같고가방속의총은어서나를작동시키라고난리에난리를피우며달그락거리고있다가방속에있는총의또다른친구인수면제도빨리자신을먹으라며뚜껑을여는듯한소리가들리는기분이들었고나의걸음소리숨소리조차그모든것이나의심장을붙잡아위아래좌우양옆으로뜯어버렸다하물며사람들이지나치는것도나를죽이려고지나가는것같고모든모든것이그러니까모든소리가그래사람들의웃음소리마저너무끔찍해그런데이런상황에서웃음이나오기는나오는거야사람이몇명이나죽어나갔는데어떻게아무렇지않게평소처럼지낼수가있는거지다들무기력한감정이들지는않는건가다들이상해이상해이상하다고제기랄이럴거면이프로젝트에참가하지않는건데내가대체무슨선택을한거지행여나로웬이여기에있을까신청했던거였는데사람들의감정을좀더가까이서지켜보고싶었을뿐인데이렇게죽게되는건절대싫어나는살고싶어무서워나는살고싶다나의친구들과한약속이있다내가사랑하는이와한약속이있다절대죽지않겠다고기필코죽지않겠다고약속했었다그런데지금그믿음을무너뜨리겠다니이게도대체무슨소린지제정신인지미친건지나같은건여전히쓸모가없구나싫어이런감각은절대로원하지않아사랑받고싶고사랑하고싶어나는멀쩡히이생을살아가고싶을뿐이었는데도대체내가무엇을바랐다고이렇게엿같이구는건데뭐가문제야이럴거면다죽어버려이개같은것들전부죽어버리라고전부쓸모없으니까짜증나게굴지마살려줘잘못했어미안해꺼져죽으라니까왜자꾸기어오는거야잘못했습니다미안합니다살려주세요나는아무죄가없어요내가그런게아니에요내가그런게아니야내짓이아니야내짓이아니야내짓이아니야내짓이아니야내가그런게아니야내가하지않았어나는그아이를죽이지않았어
그렇게 한참을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식은땀을 흘렸다. 숨은 잔뜩 가빠져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팔은 손톱으로 잔뜩 긁어버린 탓에 붉은빛의 얇은 상처들이 가득해졌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 정리를··· 해둬야겠다. 정신없이 어질러진 장소의 물건을 하나씩 주워, 원래의 위치로 옮겼다. 아, 여기가 원래의 위치가 맞기는 맞나. 모르겠다. 적당히 깔끔해 보이면 되지 않을까. 책상에 물건 하나를 툭 올려두었다. 이게, 마지막 물건인가. 이제 진짜 다 된 거지. 주위를 조금 둘러보니, 확실히. 깔끔해졌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보기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어찌 되든 좋은 거겠지. 자, 이제.
조용한 곳으로 갈 때다.
걸음을 옮겨, 아마 이 함선 내부에서 가장 조용한 곳에 도착했다. 여기면, 여기면 괜찮겠지. 수많은 이들이 내 죽음을 보진 못할 것이다. 보게 되는 이가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다시 외면해 버리는 일이지만. 그리고··· 그림자에 손을 대어, 그림자를 뽑아낸다. 형태 없이 한참을 손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기만 하던 그림자는 곧 길고 얇고 날카로운 형태의 흉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 정도면. ···이 정도면.
그리고, 지금.
손에서 만들어 낸 날카로운 그림자로 목을 겨눈다.
미친 듯이 떨리는 심장 박동이 그림자의 끝에 선명하게 닿았다. 그에 따라 그림자도 흔들렸다. 그러다, 삐끗해서. 그림자의 아주 작은 일부가 목 안으로 찔려 들어왔다. 아프다. 날카로운 흉기가 신체에 파고드는 느낌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이전에 몇 번 경험해 본 적은 있었다지만. 이번의 것은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래,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아니까. 다른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가만, 고개를 들었다. 들어 보니,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풍경과 거의 흡사한 것이 내 눈앞에 보였다.
벽을 덮은 뒤섞인 식물들과 꽃. 코를 타고 들어오는 풀의 향기, 꽃의 향기. 그것이 섞여, 자신을 감싼다. 어서 오라는 듯이, 그것이 손을 내미는 느낌이었다. 아까와는 정반대의 것이 눈앞에 선연했다. 이것은, 확실히. ···아름답다.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벽에서 무슨 빛이냐, 싶겠지만. 그것은 확실하게 나를 비추었다. 그 차갑고도 다정한 눈부심에 눈을 얇게 떠 보았다. 나는 이제 여기서 나의 생을 끝마치려고 하는데, 너는 이리도 예쁘게 나를 비추는구나.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것이 온전한 나의 마지막 숨이 되려나.
풀과 꽃내음이 가득한 공기를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쉰다.
다시 가득 들이쉬고서는,
고개를 깊게 숙임과 동시에 들은 그림자를 내 안으로 깊게 박아 넣었다.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순식간에 밀려온다. 너무 아파. 이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아니, 죽으려고 이랬다지만, 너무 아파. 잠깐. 후회했다. 너무나도 강하게 후회했다. 목을 매우 깊게 파고든 그 차가운 것의 감촉은 순식간에 뜨겁게 바뀌었다. 목 안을 불로 지지는 듯이. 그 불은 목 전체를 휘감아, 이내 전신으로 퍼졌다. 그 고통에 그림자를 강하게 잡아 소멸시켰다. 흉기가 빠지니, 목에서 피가 더 흘러나와 빠진다. 말조차 나오지 않는 고통에 상처부위를 잡아 지혈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 몸부림도 잠시 뿐이었다. 곧 몸에서 힘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 지혈을 하다 만 목에서는 피가 울럭 더 흘러나왔고, 그것을 막기만 할 힘조차 없어서. 무력하게 피가 퍼져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무력감, 또. 무력감이 발목을 잡고 심해의 깊디깊은 곳으로 끌어간다.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것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몸이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지는 것도. 몸에 힘이 거의 다 빠졌다. 눈이 점차 감겨오고,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때가 되었나.
···그러나. 정녕 내가 바란 것이 이게 맞는가.
나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과, 동료들과. 평범한 일상을 걸어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찬란하지 못하더라도. 그때처럼 빛나지 못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즐거움을 마음속에 집어넣으며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죽길 바란 주제에 실은 절실하게 행복을 바랐던 것인가?
아.
아아,
내가 바란 건.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
···
···
···
···
.
'커뮤 >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천히 내려앉는 (0) | 2024.08.06 |
---|---|
다시, 熱帶夜 아래서 (0) | 2024.07.16 |
언젠가 (0) | 2024.05.18 |
네가 살길 바랐지만. 너무 늦은 대답인가. (1) | 2024.04.21 |
나는·········. (2) | 2024.04.20 |